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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라인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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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536349><tablebgcolor=transparent><bgcolor=#536349><color=#fff> {{{+1 '''그레이라인 작전'''}}}[br]Операция Грейлайн|Operation Grayline || ||<-2><bgcolor=#536349><color=#fff> 마테르 전쟁의 일부 || ||<-2><bgcolor=#536349><color=#fff> '''기간''' || ||<-2> || ||<-2><bgcolor=#536349><color=#fff> '''장소''' || ||<-2> 랜드해협 남서 해역, 스트란트 만, 유고랜드 북부 연안 해역 || ||<-2><bgcolor=#536349><color=#fff> '''원인''' || ||<-2> 웨스타시아의 핵무기 운반 함대가 로벤자운 작전을 개시하기 위해 이동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한 루이나가, 이를 차단하고 마베라 수도권 핵 타격을 저지하기 위해 해상 봉쇄 작전을 단행 || ||<-2><bgcolor=#536349><color=#fff> '''교전국 및 교전 세력''' || ||<width=50%>'''루이나 해군'''[br][include(틀:국기, 국명=루이나, 크기=23)]||'''웨스타시아·유고랜드 연합 해군'''[br][include(틀:국기, 국명=웨스타시아, 크기=23)][br][include(틀:국기, 국명=유고랜드, 크기=23)]|| ||<-2><bgcolor=#536349><color=#fff>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지지 의사 표명국·단체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2> '''''(공식)''''' || ||<tablewidth=100%><width=50%><tablebgcolor=#fff,#1c1d1f><tablecolor=#000,#fff> <^|1> [include(틀:국기, 국명=플로렌시아, 크기=23)] 플로렌시아 [include(틀:국기, 국명=마베라, 크기=23)] 마베라 [include(틀:국기, 국명=동사랜드, 크기=23)] 동사랜드 [include(틀:국기, 국명=북산, 크기=23)] 북산 ||<^|1> 없음 || ||<-2> '''''(사실상)''''' || ||<^|1> 없음 ||<^|1> 없음 || }}}}}}}}} || ||<-2><bgcolor=#536349><color=#fff> '''지휘관''' || ||에드워드 V. 솔론 제독[br][include(틀:국기, 국명=루이나, 크기=23)] || 라파엘 코스타 제독[br][include(틀:국기, 국명=웨스타시아, 크기=23)] || ||<-2><bgcolor=#536349><color=#fff> '''전력''' || || 항공모함 2척,전함 2척, 순양함 6척, 구축함 22척, 잠수함 4척, 해상초계기 12기 등 || 수송선 20척, 구축함 2척, 호위함 8척, 잠수함 8척 등 || ||<-2><bgcolor=#536349><color=#fff> '''결과''' || ||<-2> 루이나 해군의 승리. 핵무기 수송 시도 차단에 성공 || ||<-2><bgcolor=#536349><color=#fff> '''영향''' || ||<-2> 로벤자운 작전의 폐기 및 핵무기 수송 작전 실패. 유고랜드 해군력 괴멸. 루이나 해군의 해상 통제권 강화 || ||<-2><bgcolor=#536349><color=#fff> '''피해 규모''' || || 루이나: 구축함 1척 대파, 해상초계기 1기 파손 || 웨스타시아·유고랜드: 수송선 16척 격침, 구송선 4척 나포, 구축함 1척 대파, 구축함 1척 침몰, 호위함 7척 침몰, 잠수함 1척 격침 || [목차] [Clearfix] == 개요 == 그레이라인 작전(Operation Grayline)은 1984년 5월 9일부터 1984년 6월 3일까지 마테르 전쟁 중 루이나 해군이 실시한 대규모 해상봉쇄 작전이다. 루이나는 자국 정보기관을 통해 웨스타시아가 핵탄두를 탑재한 탄도미사일을 마베라 수도권에 투하하기 위한 ‘로벤자운 작전’을 준비 중이며, 이 핵무기를 유고랜드를 경유하여 해상으로 운반 중이라는 사실을 입수하게 된다. 이에 따라 루이나 국방부는 핵 수송을 사전에 차단하고, 마베라에 대한 전략 핵 타격을 방지하기 위해 랜드해협 남서부 및 유고랜드 연안을 중심으로 해상 차단선을 형성하였다. 이 작전은 루이나 해군의 항공모함 전단 및 잠수함 함대가 중심이 되어 유고랜드 서부 해안 일대 보급선과 수송함을 식별·격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레이라인’이라는 명칭은 레이더상 회색선(Gray line)처럼 탐지되는 해상 경계선에서 유래하며, 이 선을 넘어서는 어떠한 수송선도 ‘적성 세력’으로 간주하여 즉각적으로 봉쇄 및 격침 조치가 내려졌다. 루이나는 이 작전을 통해 로벤자운 작전용 핵무기의 수송을 저지하고, 마베라 수도권에 대한 전략 타격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또한, 해당 작전은 유고랜드 해군 전력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히고, 웨스타시아의 보급망에 큰 타격을 가하면서 마테르 전쟁의 전략적 흐름을 마베라 측에 유리하게 전환시키는 전환점 중 하나로 평가된다. 루이나, 플로렌시아, 마베라, 동사랜드, 북산 등은 이 작전을 공식 지지하며 루이나의 군사적 결단에 찬사를 보냈고, 웨스타시아는 이후 한동안 대규모 함대 운용을 자제하게 되었다. == 배경 == 1983년 2월, 웨스타시아는 마테르 전쟁의 서막을 알리며 대규모 북진 작전을 단행했다. 초기에는 성공적인 공세로 평가되었고, 웨스타시아군은 마베라 왕국의 동부를 빠르게 장악했다. 사막 전격전과 공중 강습, 그리고 여러 작전은 마베라군의 초반 방어선을 허물기에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전쟁이 6개월차에 접어들 무렵, 전황은 급변한다. 루이나가 마베라 편에 서서 사실상의 개입을 선언하고, 정밀 유도탄, 군수물자, 통신장비, 위성정찰 자산 등을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마베라는 점차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특히 마베라군은 지형을 이용한 방어전과 국지적 반격을 반복하며, 웨스타시아의 보급선을 끊는 전략을 택했다. 그 결과, 1983년 9월 말경부터 마베라군의 반격이 본격화되었고, 서부 전선의 요충지인 탈무드 요새를 탈환하며 주도권을 되찾았다. 웨스타시아군은 점점 고립되기 시작했고, 군 내부에서도 장기화에 대한 불만과 동요가 확산됐다. 궁지에 몰린 웨스타시아 대통령 알빈 카펜트리 요크 (Alvin Carpentry York)는 마지막 카드로 ‘로벤자운 작전을 승인한다. 이는 전략핵을 탑재한 탄도미사일을 마베라 수도권에 기습적으로 투하해, 지휘 체계를 마비시키고 항복을 받아내려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요크는 국제사회의 비난과 핵보복을 우려해 핵무기 운용을 자국 내에서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대신 우방국 유고랜드를 경유한 해상 수송망을 통해, 핵무기를 마베라 인근 해역까지 은밀히 이동시키려는 시도를 택한다. 이 작전은 완벽히 비밀리에 실행될 예정이었으나, 루이나 정보기관(NIA 및 NRO)의 첩보 분석과 정찰에 의해 조기 탐지된다. 루이나는 즉시 대응에 나선다. 대통령 테디 해럴드는 “이대로 방치하면 마베라 수도에 핵폭탄이 떨어진다. 우리는 개입해야 한다”며 강경한 해상봉쇄 작전인 ‘그레이라인 작전(Operation Grayline)’을 승인한다. 이는 곧 루이나 해군의 항모 전단, 원자력잠수함, 해상초계기를 랜드해협 남서부 해역에 투입해, 모든 비식별 선박을 봉쇄·격침하라는 지시였다. == 전개 == === 5월 5일 === 1983년 5월 5일 오전 03시, 유고랜드 북부의 콜트만 해군기지(Koltmann Naval Base)에서는 웨스타시아 전략사령부의 요청에 따른 전술핵무기 운송 준비 작업이 공식 개시되었다. 해당 작전은 유고랜드 국방부 내부에서 “고위험 산업물자 수송 계획(ZS-13)”이라는 명칭으로 관리되었으며, 명목상으로는 방사선 관련 폐기물과 산업 장비를 수송하는 것으로 위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실제 목적은 웨스타시아 제16전술전력사령부가 운용할 단거리 전술핵무기 4기와 그 발사 운용체계의 핵심 부품을 마베라 인근 해역까지 은밀히 수송하는 데 있었다. 이날 선적 작업은 5월 7일 이른 새벽 출항을 목표로, 약 48시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행될 계획으로 구성되었다. 유고랜드 해군과 웨스타시아군은 사전에 지정된 20척의 민간 위장 수송선(Large Supply-Class, LS형)에 물자를 분산하여 탑재하기로 하였으며,핵탄두가 장착된 선박은 각각 LS-907, LS-911, LS-919, LS-905라는 등록번호로 해상에 출현하게 될 예정이었다. 콜트만 제4부두는 이날 새벽부터 완전 통제되었고, 항만 주변은 유고랜드 헌병대가 경계선을 형성한 채 외부 접근을 차단하였다. 루이나의 위성 정찰망을 피하기 위해 전자파 감쇄 장비와 고속 전송식 신호차단 모듈이 일시적으로 부두 일대를 덮었으며, 영상기록 장비와 공공 통신선은 전면 차단되었다. 선적 작업은 웨스타시아 측 기술요원 8인과 유고랜드 핵물자관리국 요원 22인으로 구성된 혼성작업반에 의해 직접 수행되었으며, 수송물은 고에너지 방열체가 삽입된 원통형 차폐 캡슐에 담겨 하나씩 선체 하부 적재구로 이송되었다. 수송될 전략핵탄두는 1기당 추정 중량 약 3,720kg, 사거리 700km 발사체로 평가되며, 각 탄두는 중성자 차폐 코어와 방사선 자동 안정화 모듈, 이중 전자기 교란 방지막이 장착된 상태로 수송되었다. 탄두 외에도 지상 제어용 항법 장비, 공중 발사 옵션 장비 키트, 모듈형 플루토늄 냉각장치 등이 함께 선적되었으며, 이들은 향후 스트란트 해역에서 잠수함 또는 수직발사 플랫폼과의 통합 운용을 전제로 구성된 패키지였다. 작업 개시 첫날인 5월 5일에는 총 2척의 선박(L S-907, LS-911)에 선적이 완료되었고, 나머지 2척은 5월 6일까지 실물을 분산 적재하여 7일 새벽 일괄 출항시키는 방식으로 계획되었다. 각 수송선은 민간 AIS(Maritime 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 장치를 고장난 것처럼 위장하여 꺼둔 상태였고, 위장된 MMSI 번호와 서류상 화물 내역, 정기항로 표기 조작 등을 통해 외부 감시망을 회피하도록 설계되었다. 또한 수송선 일부는 디젤 추진 잠수함 2척(SS-422, SS-427)의 호위 하에 랜드해협 우회항로를 이용할 예정이었으며, 웨스타시아 공군은 위성정찰 연계 전파교란 임무를 별도로 수행하여 루이나의 정찰위성 ORS 계열에 대한 간섭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 선적 작업은 공식 외교 채널을 완전히 우회한 비공식 작전으로, 유고랜드 최고안보회의에서 극소수에게만 통보된 상태였으며, 루이나 정보기관(NIA)은 이 시점에서 관련 작전의 실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마베라 정찰지휘부 또한 유고랜드 해역에서의 이상 징후를 공식적으로 보고받지 않은 상태였다. 이틀간의 선적이 완료되면, 5월 7일 새벽, 4척의 수송선은 예정된 위장 항로를 따라 스트란트 북부 해역으로 향하는 항해에 돌입하게 된다. 해당 해역은 향후 로벤자운 작전의 투발 플랫폼 설치 예정지와 가까운 지역으로, 웨스타시아는 이곳에 발사 인프라를 해상에 은닉 배치하고, 운반된 핵무기를 통해 마베라 수도권에 대한 전략적 기습공격을 단행할 계획이었다. === 5월 6일 === 1983년 5월 6일, 유고랜드 콜트만 해군기지에서는 로벤자운 작전을 위한 전술핵 운송 준비가 이틀째에 접어들었으며, 전날에 이어 LS-919호와 LS-905호에 대한 핵탄두 및 보조 장비 선적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이날 오후, 선적 과정 중 심각한 기술 사고가 발생하면서 작전 일정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고는 오후 13시 42분경, LS-919호에 탑재 예정이던 핵탄두 1기(식별번호 03/Λ-W)를 크레인을 통해 선체 하부 격납고로 이송하던 중 발생했다. 지지장치 해제 시점에 대한 작업자 간 오인으로 인해, 캡슐이 약 23cm 높이에서 낙하하며 차폐구조물 일부가 손상되었고, 내장된 수은 냉각압력장치에 이상 진동이 발생하였다. 이어진 방사선 탐지기 계측에서 세슘계 감마선량이 단시간에 0.94mSv/h까지 치솟았고, 즉시 작업은 전면 중단되었다. 유고랜드 해군은 즉시 핵물자 대응 프로토콜(Z-11-B)에 따라 사고 격실을 격리하고 전체 부두 작업을 3시간 정지, 인근 수송선 전력을 모두 철수 조치했다. 폭발물처리반(EOD)과 핵안전반은 사고 발생 5분 내 현장에 도착했으며, 문제의 탄두는 콜트만 해군기지 방사능 격리구역으로 이송되었다. 작업자 2명이 경미한 방사선 피폭 판정을 받았으나, 경과 관찰 후 회복 조치되었다. 웨스타시아 측 기술진은 해당 탄두의 재사용 가능성을 부정하고, 예비 보관 중이던 04/Λ-Y 코어를 대체 탄두로 지정, 저녁 20시경 선적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격납실 재점검과 탄두 교체, 안전 검증 및 전자 차폐장비 보완 조치로 인해 전체 일정이 최소 72시간 지연되었다. 이로 인해 원래 5월 7일로 예정되어 있던 수송선단 출항은 5월 10일로 연기되었으며, 로벤자운 작전의 초기 일정이 크게 흔들리게 된다.[* 이시점에서 수상함을 앤지한 루이나 국가정찰국은 유고랜드 일대에 대한 위성감시를 강화한다] 해당 사고는 유고랜드 및 웨스타시아 합참 내부에서 철저히 은폐되었다. 콜트만항 일대는 3시간 이상 통신이 정지되었고, 루이나 감청망의 탐지를 피하기 위해 모든 군 통신을 광케이블망으로 전환, 레이더 출력은 정파 처리되었다. 루이나 해군 및 정찰기들은 사고를 인지하지 못했으며, 루이나 국가정보국(NIA)과 정찰국(NRO) 또한 이 시점에서는 수상한 정황을 보고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 사고는 훗날 로벤자운 작전 전체 실패의 서막이자 결정적 단초로 평가받게 된다. 핵무기 수송 일정이 밀린 결과, 루이나 정보기관은 이상항적을 포착하고, 그레이라인 작전을 조기에 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콜트만 항구에서 벌어진 단 하루의 기술사고가, 웨스타시아 전략 전체를 무너뜨린 첫 단추였던 것이다. === 5월 9일 === 1983년 5월 9일 오전, 루이나의 정찰위성 ORS-23A ‘페리헬리온’은 유고랜드 상공을 통과하던 정기 비행 중, 콜트만 해군기지(Koltmann Naval Base) 일대에서 열영상 기반 이상 패턴과 항만 내 군사 활동의 급증을 포착했다. 이 관측은 루이나가 로벤자운 작전에 간접적으로 접근하게 된 최초의 정찰 기록으로, 이후 해군과 정보기관의 대응 체계를 급속히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해당 위성은 루이나 정찰사령부 산하 우주자산국 소속의 중고도 적외선 관측 위성으로, 6시간 주기의 자동 궤도 전환과 정밀 SAR(합성개구레이더)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이날 아침 06시 48분 촬영된 이미지에서, 콜트만 제4부두를 중심으로 적외선 대역의 강한 열원 다발과 반복된 야간 작업 흔적, 민간 상선으로 위장된 LS 계열 선박들, 그리고 복수의 방사열 처리 장비와 이동식 냉각탱크가 관측되었다. 이상 징후를 확인한 정찰사령부는 즉시 NIA(국가정보국) 기술분석국에 1차 데이터를 이관했고, 해당 부두의 활동 강도를 “전술 물자 이상 상태”로 분류했다. 이날 오후 작성된 내부 보고서 초안에는 다음과 같은 핵심 분석이 담겼다: *콜트만 제4부두에 정박 중인 LS-919, LS-905 등의 선박이 민간등록 상태임에도 냉각설비, 외부 차폐구조물, 전자기 방해막 등 군사 전용 설비를 갖추고 있음 *최근 72시간 동안 AIS 송신 기록이 완전 정지된 선박이 최소 2척 이상 존재 *동일 선박에 대해 야간 시간대 기준 열 방출량이 기준치 대비 6.4~8.1배 높게 기록, 핵물질 관련 장비 혹은 방사선 차폐물 적재 가능성 제기 *부두 주변 작업 반경 확대, 통신 전파 감쇄 패턴, 광대역 노이즈 차폐 흔적 존재 이러한 정보가 접수되자, 루이나 해군본부는 세라드 해협~스트란트 북부 해역 전 구간에 대한 감시 및 정찰 임무를 10배 이상 강화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따라 기존 1일 2회 관측 주기로 운영되던 위성 정찰과 신호정보 수집 임무는 1일 24회 이상 반복되는 집중 감시 체계로 전환되었고, 특히 콜트만 해역은 전략 정찰구역 “SV-RED”로 상향 조정되었다. 당시 루이나는 해당 수송작전이 구체적으로 전술핵과 관련되었는지를 단정하지는 못했지만, “작전성 고위험 물자의 해상 수송 준비가 진행 중이며, 그것이 마베라 해역을 겨냥하고 있다”는 가설을 정보 당국 전반에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한편, 이 시점에서도 콜트만항의 핵탄두 선적은 여전히 완료되지 않았으며, 5월 6일 발생한 기술 사고로 인해 예정되었던 출항 일정은 최소 이틀 이상 지연되고 있었다. 유고랜드와 웨스타시아 측은 여전히 철저한 보안 아래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루이나가 감지한 정보는 아직 직접적인 개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1983년 5월 9일 밤 11시 03분경, 루이나 국가정보국(NIA)은 유고랜드 내 자국 정보망으로부터 로벤자운 작전의 실체와 핵무기 운송 준비 사실을 최초로 명확히 확인하였다. 이는 같은 날 오전, 정찰위성 ORS-23A가 콜트만 해군기지에서 이상 열원 및 비정상 군수작업 정황을 포착한 데 이어, 루이나 정보당국이 휴민트를 통해 확보한 결정적 증거였다. 루이나는 유고랜드 내 산업계, 항만 행정조직, 군 내 협조자를 포괄하는 복합형 비공식 정보망(H-36 네트워크)를 오랫동안 운용하고 있었으며, ORS-23A의 영상 분석 결과가 보고된 직후, NIA는 해당 지역 네트워크에 “Z-코드 상황분석 보고” 요청을 하달했다. 이 요청은 ‘핵물질 또는 전략위험군 수송 여부 확인’을 의미하는 최고 등급 질의로 분류되었다. 이에 따라 유고랜드 해군 항만 물류대에서 근무 중이던 비밀 협력자 1명과, 콜트만 기지 행정반 내 민간기술계약직으로 위장한 루이나계 요원 2명이 5월 9일 저녁부터 접촉 시도 및 감시 활동에 착수했다. 이들은 작업 교대 시간대와 항만 물자 출입내역을 바탕으로, 선적 중인 특수 화물의 실체에 접근하려 했다. 밤 10시 45분경, 요원 중 한 명은 부두 외곽 소형 물류창고에서 “방사성 냉각 폐기물 재처리 대응반”이라는 명목으로 출입한 웨스타시아 기술자 그룹의 대화 내용을 도청하는 데 성공했다. 도청된 대화에는 핵탄두 캡슐의 진동 안정화 실패, 교체 탄두의 열 방출값 재계산, 발사 플랫폼과의 연결 테스트 연기 등, 명백히 전술핵 관련 용어와 운용체계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NIA는 밤 11시 03분부로 상황등급을 ‘적성국 핵전력 운용 준비 중’으로 상향 조정하였다. 이 보고는 즉시 루이나 국가안보실과 합참 전략국, 그리고 외교부 기밀국 채널을 통해 대통령실에 전달되었으며, 루이나 정부는 처음으로 다음 세 가지를 전략적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1. 유고랜드는 웨스타시아의 핵무기 운용을 위한 제3국 물류 중계기지로 기능하고 있다. 2. 콜트만 해군기지에서는 민간 화물선 위장을 통한 전술핵 운송이 진행 중이며, 적어도 3기 이상의 핵탄두가 이미 선박에 적재된 상태이다. 3. 수일 내에 해당 수송선단이 마베라 인근 해역으로 출항할 경우, 마베라 수도권에 대한 핵공격이 임박할 가능성이 있다. 이 정보를 통해 루이나는 위성 정찰과 전자신호 감청 단계에서 감지했던 정황들이 단순한 전략물자 운송이 아니라, 실질적인 핵무기 작전 전개임을 확증하였고, 이후 그레이라인 작전의 구체적 실행계획 수립에 즉시 착수하게 된다. === 5월 10일 === 1983년 5월 10일 오전 3시, 루이나 대통령 테디 해럴드는 국가안보실 및 합참의 주요 참모들과의 긴급 회의를 마친 직후, ‘그레이라인 작전(Operation Grayline)’의 발동을 정식 지시했다. 이는 웨스타시아가 자국의 전략핵을 해상으로 운반해 마베라 왕국 수도권을 기습 타격하려 한다는 정보를 루이나 정보기관이 확보한 데 따른 긴급 대응이었다. 작전 지시 직후, 해럴드 대통령은 새벽 4시경 벨포르 대통령궁 기자실에 모습을 드러내고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에서 해럴드 대통령은 “루이나는 지금 이 순간, 세계 평화와 인류 문명을 지키기 위해 해상에 회색 선을 긋는다”고 선언하며, 핵무기의 해상 운송을 결코 용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우리의 위성 정찰 자산과 HUMINT 네트워크는 현재 유고랜드 해역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정상적 군수 움직임이 전략핵과 연관되어 있음을 확인했으며, 이는 루이나와 마베라, 나아가 인류 전체의 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이어 “작전명 ‘그레이라인’은 우리가 설정한 회색의 해상 경계선이자, 핵무기와 문명 사이에 긋는 최후의 선이다”라며, 루이나 해군이 곧 모든 비식별 수송선에 대한 강제 봉쇄 및 필요시 격침 작전에 돌입할 것임을 공표했다. 기자회견 직후, 웨스타시아 정부는 루이나의 발표를 전면 부정하고 나섰다. 대통령 앨빈 카펜트리 요크는 국영방송에 출연해 “핵무기를 해상으로 수송한다는 루이나의 주장은 허위이며, 이는 군사개입 명분을 조작하려는 명백한 선전 행위”라고 비난했다. 웨스타시아 외무부 역시 “루이나의 일방적 해상 봉쇄는 국제법 위반”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조만간 루이나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루이나 대통령의 발표는 마베라를 비롯한 루이나 동맹국들에게는 즉각적인 지지를 얻었다. 마베라 왕가 대변인은 “루이나의 결단력은 국왕 폐하와 국민 모두에게 큰 희망”이라며 성명을 발표했고, 플로렌시아·동사랜드·북산 등지에서도 루이나의 정보력과 군사적 대응에 대해 일정 수준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분위기가 포착되었다. 반면, 사비에트와 청평은 비교적 침묵을 유지하며 상황 관망에 들어갔다. 이날 새벽, 벨포르의 대통령궁 지하작전실에서 시작된 작은 결단은, 곧 랜드해협 전역에 팽팽한 긴장감을 몰고 오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레이라인 작전의 발동은 단순한 해상봉쇄가 아닌, 핵무기의 이동 자체를 물리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루이나의 의지를 천명한 선언이자, 마테르 전쟁이 외곽전선까지 확장되어 국제화되기 시작한 결정적 시발점이었다. 1983년 5월 10일 새벽 5시, 루이나 국방부 합동참모본부의 작전통제에 따라 제3기동함대와 제7해상초계전단이 ‘그레이라인 작전(Operation Grayline)’의 일환으로 랜드해협 남서 해역에 전개되었다. 이는 몇 시간 전 테디 해럴드 대통령의 작전 승인 이후 즉시 실행에 돌입한 고속 전개 계획에 따른 것으로, 루이나 해군은 전시에 준하는 수준의 준비 태세를 유지한 채 해상 봉쇄망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루이나 해군은 총 3개 수상 전투전단과 1개 핵추진 잠수함 전대, 그리고 해군 해상작전항공단 소속 해상초계기 12대를 즉시 출격시켜, 유고랜드 인근 해역 및 랜드해협 전역에 광역 탐색 구역을 설정하였다. 제3기동함대 소속 항공모함 RNS 템페스트, 순양함 2척, 구축함 5척, 보급함 1척 등이 초계와 감시, 식별, 통신 차단 작전을 수행했고, 제9잠수함대 소속 핵추진 공격잠수함 3척이 심해 회랑과 해상 차단 구역에 진입해 비식별 선박의 움직임을 수중에서 추적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날 설정된 ‘그레이라인’ 해상 경계선(EWS; Engagement Warning Sector) 은 루이나군이 위성·항공·해양정보자산을 종합해 설정한 전략적 해상 차단 구역으로, 해당 경계선을 통과하는 모든 선박은 사전 식별 절차 없이는 적성 의심 선박으로 간주되어 즉시 차단 조치 대상이 되었다. 경계선은 루이나군의 전술 네트워크상에 회색의 호선(弧線)으로 표기되었고, 이로 인해 ‘그레이라인’이라는 명칭이 실제 작전명으로 채택되었다. 루이나 해군 대변인은 당일 오전 발표에서 “우리는 지금, 핵무기의 확산과 사용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작전의 목적은 선박 격침이 아니라, 세계를 지키기 위한 선제적 차단”이라고 밝혔다. 1983년 5월 10일 오전 7시경, 랜드해협 남서부 해상에 배치된 루이나 해군 제3기동함대 소속 패러것급 구축함 RNS 발렌시아(Valencia) 가 그레이라인 작전 수행 중 식별 불능 상태의 중형 화물선에 대해 경고탄 발사 후 함포 실탄 사격을 실시하였다. 이는 루이나 해군이 설정한 ‘그레이라인 해상 경계선’을 침범한 것으로 간주된 첫 사례로, 실질적인 무력 충돌이 발생한 작전 개시 이후 최초의 교전이었다. 해당 선박은 국적기 없이 운항 중이었으며, AIS(자동식별장치) 신호를 차단한 채 루이나가 고위험 구역으로 설정한 EWS를 직선으로 통과하던 중이었다. 루이나 해군은 세 차례에 걸쳐 무선 경고를 발신했으나 응답이 없자, 127mm 주포로 선체 전방에 실탄 2발을 사격햤으나 항로를 변경하지 않자, 선체 전방 엔진실로 추정되는 부분에 함포사격을 개시하였다. 이에 따라 선박은 정지되었고, 루이나 해군(승선 조사조)이 탑승해 검문을 실시한 결과, 선박은 유고랜드 국적의 민간 농산물 운송선으로 확인되었다. 사고는 즉시 외교 문제로 비화되었다. 웨스타시아 외무부는 사건 발생 1시간 만에 성명을 통해 “국제 공해상에서 명백한 무력을 동원한 불법 행위”라며 강력히 항의했고, 루이나의 “무차별 사격과 민간인 위협 행위”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긴급 회부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웨스타시아 정부는 특히 “루이나가 핵무기 수송을 구실로 남의 나라 영해에 무단으로 군사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루이나 국방부는 같은 날 정오 발표한 성명에서 “적성 수송선 위장 가능성이 있었고, 해당 선박이 경고를 무시한 채 침투를 시도한 상황에서의 정당한 군사적 대응이었다”고 해명하였다. 또한 루이나 외무부는 “우발적 충돌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핵 확산 방지라는 국제적 책임 아래 작전은 예정대로 계속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1983년 5월 10일 오전 11시, 웨스타시아 해군 소속 아벤타급 호위함 WNS 레스터필드(Lesterfield) 가 유고랜드 연안 해역에서 민간 선박의 항로 안전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출항하였다. 레스터필드는 이전 시각(오전 7시경) 루이나 해군이 민간 선박을 실탄으로 공격한 데 대한 긴급 대응 성격의 임무를 부여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해당 지역에 접근 중이었다. 그러나 루이나 해군 측은 이를 작전 구역(EWS: Engagement Warning Sector) 침범으로 간주, ‘적성 전투함 접근’에 따른 교전 규칙에 따라 무력 대응을 결정했다. 오전 8시 17분경, 루이나 해군 제3기동함대 소속 패러것급 구축함 RNS 퍄러것은 ASM-84 하푼 대함미사일 1발을 발사하여 레스터필드 함의 좌현 중앙부에 직접 명중시켰다. 미사일은 연료 저장 구역에 직격, 화재와 2차 폭발을 유발했고, 이에 따라 레스터필드는 조타 기능과 통신 능력을 상실, 자력 항해가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 약 30분 후, 인근에 대기 중이던 유고랜드 소속 예인선이 긴급 구조에 나섰으며, 승조원 116명 중 12명이 중경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루이나 국방부는 즉각 성명을 통해 “작전구역 내에 진입한 무장 군함을 정당한 적대 세력으로 간주하고 교전한 정당방위 행위”라고 발표했다. 또한, 웨스타시아 해군이 민간 선박 보호라는 명분으로 전투함을 작전구역에 투입한 행위 자체가 도발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웨스타시아 정부는 해당 사건을 두고 “루이나가 의도적으로 충돌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는 국제법상 민간 보호 임무에 대한 무력 침공이자 국가 간 무력공격”이라고 규탄했다. 웨스타시아 외무부는 즉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비상 소집 요청을 발송, 사태 전반을 국제 분쟁으로 전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 사건은 그레이라인 작전이 민간선박 검문을 넘어, 양국 간 사실상의 해상 전투로 확전되었음을 보여주는 첫 사례이며, 이후 사태는 급속히 격화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루이나 해군은 같은 날 작전규칙을 한층 강화하였고, 웨스타시아는 ‘자국 해군에 대한 일방적 공격’을 명분으로 대규모 해상 증원을 선언하였다. 웨스타시아 해군 호위함 ‘레스터필드’가 루이나 해군의 공격을 받아 대파된 사건 직후, 웨스타시아 외무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UNSC) 에 긴급 소집 요청서를 제출하였다. 요청서는 그레이라인 작전의 국제법적 정당성 여부, 루이나의 과잉 대응, 중립국 해역에서의 무력 충돌 가능성 등을 의제로 삼았으며, ‘지역적 무력 충돌이 전면전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같은 날 오후 6시(UTC 기준) 뉴욕 유엔 본부에서 안보리 긴급회의가 비공개로 개최되었다. 회의에는 루이나, 웨스타시아, 유고랜드 외에도 상임이사국 5개국(미합중제국, 소련, 플로렌시아, 사비에트, 청평) 대표단이 모두 참석하였으며, 마베라·동사랜드·북산 등 당사국 연합도 옵서버 자격으로 회의에 입장하였다. 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쟁점이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1. 루이나의 해상 작전 ‘그레이라인’의 국제법 위반 여부 웨스타시아 대표단은 루이나가 유고랜드 공해상에서 민간 선박을 오인 공격하고, 자국 군함을 공격한 것은 명백한 군사도발이며 UN 해양법 협약 위반이라 주장하였다. 반면 루이나 측은 “해당 해역은 전략물자(핵무기 포함)의 불법 운송이 포착된 지역”이며, 자위권 행사이자 핵확산 방지를 위한 정당한 조치라 반박하였다. 2. 민간선박 오폭과 군함 피격의 책임 소재 중립국 플로렌시아는 루이나의 해명 불충분을 지적하며 “루이나는 선제적 정밀확인 절차 없이 실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명백한 과실이 있다”고 발언했다. 사비에트는 “핵무기 운송에 대한 개입은 정당화될 수 있으나, 그 과정에서의 군사행위는 반드시 국제 감시 하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3. 전면 확전 방지 및 조사단 파견 제안 미합중제국 대표는 긴급 성명을 통해 “양국의 무력 충돌이 랜드해협 전체 안보 질서를 뒤흔들 수 있다”며, 현장 조사단 파견과 중재위원회 구성을 제안하였다. 중회인민공화국은 “상호간의 군사적 자제와 투명한 해상 항로 관리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중재적 입장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안보리는 구속력 있는 결의안 도출에는 실패했으나, 마베라 인근 해역에 대한 유엔 감시단 파견, 핵무기 운송 의혹에 대한 국제조사 착수, 루이나 및 웨스타시아 양국에 추가적 군사행동 자제 촉구 등의 내용을 담은 의장 성명을 채택하는 데에는 합의하였다. 루이나 외무부는 의장 성명에 대해 “전면 수용은 아니지만, 국제사회의 우려를 경청하겠다”고 밝혔고, 웨스타시아는 “루이나의 무력행위를 국제사회가 묵과해서는 안 된다”고 반발하였다. 이로써 마테르 전쟁의 외교적 국면은 보다 복잡한 다자적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민간 선박 오인 사격 및 웨스타시아 해군 함정과의 무력 충돌 이후, 루이나 해군은 해역 내 모든 작전 함정에 대해 교전규칙(RoE)의 일시적 강화 조치를 해제하고, 비식별 선박에 대한 대응을 정밀화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에 따라 오후 11시경, 루이나 해군의 페리급 호위함 중 1척이 랜드해협 남서부 구간을 느린 속도로 항해하던 소형 화물선을 포착하고 정지 명령을 발신하였다. 당시 선박은 유고랜드 국적 선사 소속의 '올란디아 호'로, 문서상은 건축자재와 잡화류를 운송 중인 상선으로 기재되어 있었으나, 항적과 적재량, 무선 교신의 일부 누락 등이 확인되면서 루이나 해군은 이를 위험요소로 분류하고 대응에 나섰다. 이전의 오폭 사례와 국제적 압력을 감안하여, 루이나 해군은 이번에는 정지 명령 후에도 35분간 교신을 지속하며 승무원의 반응을 확인했고, 선박 측은 즉각 정지 후 루이나 해군의 검문 요청에 협조했다. 검문은 현장에 투입된 해군 특수점검반에 의해 약 1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결과가 도출되었다: 1. 무기 및 전략물자 발견 없음 2. 화물칸에는 실제로 콘크리트 블록 및 식료품 등이 혼재되어 있었음 3. 화물 적재 목록은 항만 서류와 대부분 일치하였으나, 일부 항목에 ‘군수물자’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부품류 존재 검문 결과 ‘올란디아 호’는 직접적인 위협 요인은 아닌 것으로 판단되었고, 루이나 해군은 경고 조치 후 즉시 출항을 허용하였다. 이후 루이나 국방부는 “정지 명령에 응한 점, 검문 협조에 감사”를 표하며, “정확하고 절제된 작전이야말로 오판의 재발을 막을 유일한 길”이라고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이 사건은 그레이라인 작전 발동 이후 처음으로 무력 충돌 없이 완료된 검문 사례로 기록되었으며, 국제사회에서도 루이나의 전술적 자제가 일정 부분 회복되고 있다는 평가가 조심스럽게 제기되었다. 웨스타시아는 이에 대해 별도 입장을 내지 않았으나, 민간 선박에 대한 대응 양상이 조율되고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5월 11일 === 1983년 5월 11일, 루이나 해군은 ‘그레이라인 작전(Operation Grayline)’의 일환으로 랜드해협 남서 해역에서 선박 7척에 대한 정밀 검문 작전을 실시하였다. 이날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 사이에 걸쳐 진행된 검문은, 루이나 해군의 P-5 3 해상초계기가 탐지한 수상한 항적을 토대로 기획된 것이었다. 이에 따라 패러것급 구축함과 해군 보안대가 투입되어 해상 통제선 근처를 항해하던 각국 상선을 차례로 정지시켰고, 선박들의 자발적인 정박 협조 하에 검문이 진행되었다. 검문 대상은 플로렌시아, 동사랜드, 유고랜드, 북산, 마베라 등지에서 출항한 총 17척의 화물선 및 상선이었다. 선박에는 농기계 부품, 철강재, 피복류, 식용유, 주방 기기 등 다양한 상업용 물자가 적재되어 있었으나, 루이나 해군과 국가정보국(NIA) 연락장교, 해군 조사단이 실시한 승선 점검 결과, 전략 물자나 군수 물자로 판단할 만한 위협 요소는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선적 문서와 실제 적재물 간의 불일치도 확인되지 않았으며, 각 선박의 항로와 통신기록 또한 정상 범위로 평가되었다. 검문이 종료된 뒤, 루이나 해군은 관련 작전 보고서를 대통령실과 국가정보국에 상신하였다. 국방부는 이날 작전에 대해 “직접적인 핵무기 운송 정황은 없었지만, 현재 해상 이동 경로가 불규칙하게 변화하고 있고, 각국 선박들이 이 해역을 우회하지 않고 여전히 통과하고 있어[* 그럴수밖에 없는게 마땅한 다른 길이 없다],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정밀한 정보 기반의 작전수행이 핵무기 운송 저지라는 목표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으며, 과잉대응 없이 국제적 신뢰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의 검문은 작전 개시 이후 루이나 해군이 수행한 최대 규모의 비접전 작전으로, 외신들로부터 “과잉 충돌 없이 군사적 정당성을 확보한 전형적인 예방적 해상작전 사례”라는 평가를 받았다. === 5월 13일 === 5월 13일, 루이나 해군의 그레이라인 작전이 나흘째에 접어들면서 웨스타시아 내부에서는 긴장과 초조가 고조되었다. 특히 루이나 정보국이 유고랜드 항구에서 진행 중이던 핵무기 선적 작전을 탐지하고 봉쇄작전을 본격화한 이후, 로벤자운 작전의 실패 가능성은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에 따라 웨스타시아는 결단을 내렸다. 대통령 알빈 카펜트리 요크는 참모진과의 긴급 전략회의에서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 핵무기 운송을 강행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결국 5월 13일 오전, 마침내 전략핵 탑재 의혹이 있는 유고랜드 국적 상선 2척이 출항했다. 두 선박은 선적 완료 후 즉시 랜드해협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으며, 이들의 표면상 항적은 일반 기계 부품 수송 임무로 위장되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웨스타시아 해군은 비밀리에 잠수함 4척을 배치해 상선들을 원거리에서 엄호하기 시작했다. 이 잠수함들은 무소음 항행이 가능한 디젤-전기 추진 기반의 U-타입 잠수함으로 추정되며, 랜드해 남단 해역에 투입되어 루이나 해군의 탐지망을 우회하려 시도하였다. 잠수함의 주요 임무는 다음과 같았다: 1. 루이나 구축함대의 동태 감시 및 상황 보고 2. 상선 항로의 안전 확보 3. 위기 상황 발생 시 유사시 대응 및 핵물자 자폭 방지 작전 개입 이러한 움직임은 루이나 측 정찰 자산에 의해 당일 즉시 탐지되지는 않았지만, 이후 NIA 및 해군정보국(NIO) 측은 수중 음파 패턴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추가 분석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3년 5월 13일 밤 10시경, 루이나 해군 제3기동함대 소속 캘리포니아급 순양함 RNS 샤를 몽테뉴는 랜드해협 남서 해역에서 정찰 항해 중 정체불명의 수중 음파를 탐지했다. 감지된 신호는 약 1,100m 심도에서 출현한 것으로, 초기엔 대잠 감시장비에 혼선이 생긴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이후 약 9분에 걸쳐 추적한 결과 고속 선회, 급정지, 수직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불규칙한 기동을 보이면서 의심이 증폭되었다. 이에 따라 루이나 해군은 대잠작전코드 ‘블라인드소드’를 발동하고, 해당 수중체의 정체 파악 및 대응 태세에 돌입했다. 루이나 국방부 해양정보처는 이 수중체가 자연 생물일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검토했으며, 국립생물연구원(NBR)과의 공동 분석을 통해 ‘고래류의 오인 탐지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분석 결과, 해당 수중체는 비자연적 이동 경로와 기동 성능을 보였으며, 이는 통상적인 해양 포유류가 나타내지 않는 행동양식이었다. 소나 반향신호가 금속성 음영을 강하게 띠었고, 고래의 장기 밀도나 체내 공기 구조와는 명백히 다른 패턴을 나타냈다. 열감지장비(IR-Seek 3000)로도 어떠한 생체 열반응이 포착되지 않았고, 이는 수중 포유류 존재 가능성을 거의 배제하는 근거로 작용했다. 이러한 기술적 판단과 상황적 증거를 종합한 루이나 해군은, 해당 수중체가 웨스타시아 측이 비밀리에 파견한 전략급 또는 중형급 디젤잠수함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이 시점은 웨스타시아가 전술핵을 실은 상선단을 은밀히 출항시키려는 움직임이 감지된 후였기에, 루이나 군 수뇌부는 이 신호를 ‘로벤자운 작전 수행 전 호위전력 투입’의 전조로 간주하였다. 이에 따라 루이나 합참은 대잠경계범위를 확대하고, 수중 수색단의 동원 준비령을 발동하였다. 또한 ‘샤를 몽테뉴’함은 즉각 대잠 작전 모드로 전환하여 소나탐색, 기뢰 투하, 대잠헬기 전개를 시작하며, 마침내 마테르 전쟁 해상 전역의 전면 확대 조짐을 예고하게 된다. === 5월 14일 === 5월 14일 새벽 2시 14분경, 의심 수역에 폭뢰 3발이 투하되었으며, 약 1시간 뒤 길이 16미터에 달하는 향유고래(Sperm Whale) 사체가 수면 위로 떠올라 이른바 ‘고래 오인 사건’으로 불리게 되었다. 루이나 국방부는 이에 대해 "수중 음파 특성이 이례적이었으며, 전시 경계 상황에서의 불가피한 판단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이면에는 루이나 해군이 감지하지 못한 더 중대한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다. 루이나 정보당국의 사후 분석 결과, 웨스타시아 해군 소속 하스만급(Hasman-class) 잠수함 1척이 실제로 해당 수역에 근접 대기 중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당시 해당 잠수함은 핵무기를 실은 상선을 비밀 호위하기 위해 이동중인 전단에 속해 있었으며, 루이나 해군의 폭뢰 투하로 인한 수압 충격으로 전자장비 일부가 손상되었고, 일정 시간 동안 통신 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웨스타시아는 일시적으로 작전 통제권을 상실하고, 상선 호위계획의 일부 조정 및 선단 위치 변경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루이나는 이 사실을 즉각적으로 파악하지 못했고, 해상에는 단순한 오인 사격에 의한 민간 피해가 발생했다는 여론만이 형성되었다. 당시 웨스타시아 측은 "루이나가 생태계까지 파괴하며 국제 해양법을 위반했다"는 비난을 쏟아내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만약 해당 폭뢰가 수 미터만 더 가까웠다면, 잠수함 자체가 파괴되거나 기밀 임무가 노출될 위험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작전 초기 국면에서 루이나의 판단 미스로 평가되었지만, 실제로는 웨스타시아 해군의 위험한 침투를 우연히 방해한 결정적 변수로 기록된다. 동시에, 웨스타시아로 하여금 로벤자운 작전의 일정 가속화를 검토하게 만든 심리적·전략적 압박 요소로 작용하였다.
Libe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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